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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 주사암 마당바위

(주)대성테크 2010. 4. 25. 08:59

 

 

 

 

 

 

 

 

 

 

 

 

 

 

 

 

 

 

 

맹위를 떨치던 동장군이 몇칠간 기성을 부리더니 오늘은 날씨가 쪼매 주춤하여
평소에 몇번 무심코 지나치던 여근곡이 갑자기 생각나서 다시 가보기로 하였다.

여근곡이 있는 주산이 오봉산인데 이 오봉산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산은 전국에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여기 소개하는 오봉산은 경북 경주시 건천읍 신평리에 있는곳이며
이곳 정상엔 신라시대에 축성한 부산성(富山城)이 있으며 그 조금 아래엔 얼마전
드라마로 방영된 선덕여왕과 인연이 깊은 여근곡(女根谷), 일명 옥문지(玉門地)가 있다.

------  여근곡(女根谷)   -------
 이 여근곡에 대하여 삼국유사에 전해 오는걸 옮기면
 신라 최초, 아니 우리역사에서 최초로 여왕으로 등극한 선덕여왕시의 겨울.(서기 636년)
 여왕재임 5년에 겨울잠을 자야할 흰개구리가 영묘사 옥문지에서 3일간이나 울어
 대신이 여왕께 아뢰니 이에 선덕여왕(김진덕)은 알천장군에게 도성밖 서쪽 부산(富山)에
 적병이 숨어 있으니 물리치라 하여,
 이에 알천장군은 군사를 이끌고 달려가보니 과연 여왕의 말한바와 같이 백제 군사 오백이
 숨어 있어 모두 소탕하고 백제장군 우소도 사살하였다.

 여왕의 신통력에 감탄한 신하들이  그 뜻을 여쭈어보니
 여왕은 개구리 소리는 병란을 뜻하고 흰색은 서쪽이며 옥문(玉門)은 여자의 음부를
 뜻함이니 즉 서쪽 음부 모양으로 생긴 골짜기에 적병이 숨어 있는걸 알수있으며,
 이는 남근(男根)이 여근(女根)속에 들어오면 패하기 마련이라 하였다.
 ** 이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음양설도 맞는지 모르지만
              저의 생각엔 정보수집에 의한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여왕의 선견지명과 판단력이 뛰어났음이 분명하고,
 또한 여왕은 미리 자기의 운명할 날도 예측하고 신하들에게 알리어
 꼭 그날 그시에 생을 마감했으며 자기가 묻힐곳 까지 지시했으니,
 그곳이 경주 낭산 남쪽에 위치한 오늘날의 능이며,
 그리멀지 않은곳에 아버지인 진평왕릉이 있고, 그다음 왕위를 물려준 조카인 무열왕은 서쪽에
 그 다음인 문무왕은 화장하여 감포 대왕암에, 그의 아들인 신문왕은 선덕여왕릉 아래에
 오늘날까지 존재하고 있다.

 *오늘 본인이 집에 오는길에 선덕여왕릉에 들렸더니 드라마 영향으로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린탓에 능주위 잔듸가 밟혀 고사하고 있는걸 볼때
  ㅎㅎ..너무 유명해도 탈인것 같아요.

 ***사진 분량이 많아 다음으로 이어 집니다.

-------  주사암 (朱沙庵)  ----------

  주사암은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고
  이곳 주산인 오봉산정상  바로 아래에 있으며 부산성을 축성할때
 의상대사가 주사암을 산성안에 두면 신라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예언했으나 그로부터 수백년후 신라가 멸망하였으니 영원한것은
 없는게 아닐까 합니다.

 이 주사암은 산 정상에 위치해 있지만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가 나있고 절 앞에 주차장이 있어 차량으로도
 갈수 있으며 풍광이 뛰어나 사계절 어느 때라도 가볼수 있는곳 입니다.
 ㅋㅋㅋ..올라가는 길이 경사가 심하여 물론 차가 힘깨나 써야 할겁니다.
 또한 마당바위가 1~2분 거리에 있으니 꼭 보시고 오세요!
 그곳은 백명이 족히 앉을수 있는 넓이 이고 선덕여왕 최후의 촬영지 입니다.

 지면상 주사암에는 전해오는 전설을 간략하게 올립니다.

 신라시대 주암(朱巖) 바위 굴에서 수도하는 노승이 있었는데
 가라사대""나는 어떠한 경국지색의 여인이 오드래도 흔들리지 않으며
                내 마음을 빼앗지 못할 것이다고. 큰소리를 치니
 이 소문을 들은 한 귀신이 노승을 시험해 보고져
 도성에 몰래 들어가 밤마다 아주 이쁜궁녀를 데려다가 노승의 곁에 두었다.
 그런데 도성에서는 밤마다 궁녀가 나갔다 오므로 문초를 하니
 궁녀 자신도 모르게 어딘가 잡혀 갔다 오는데 그곳을 모르겠다고 하여
 그러면 붉은 모래 주머니를 줄테니 나올때 바위위에 뿌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군사들을 풀어 이 붉은 모래를 쫓아 부산성에 까지 오게 되어
 와서 보니 모래가 바위위에 뿌려져있느지라 그후 이 바위를 주사암,
 옆에 있는 절을 주사암(朱沙庵)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산성, 주사산성에 전해오는 전설은 아래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