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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마저 외면한 금양호 98호 선원들

(주)대성테크 2010. 4. 20. 12:17

대통령마저 외면한 금양호 98호 선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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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 임지영 기자 | 입력 2010.04.20 11:18 | 수정 2010.04.2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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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연안동 주민센터 2층 여자 화장실엔 최근 새 칫솔과 컵이 늘었다. 직원들 게 아니다. 주검조차 찾지 못한 금양98호 실종자 가족들이 주민센터에 대책위원회를 마련하면서 달라진 풍경이다.

천안함 실종 장병들을 수색하고 돌아오던 금양호가 침몰한 지 19일째. 가족들은 주민센터에 마련된 '금양98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사무실로 출퇴근한다. 이원상 대책위 위원장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공무원 출근시간에 맞춰 나왔다가 문단속을 해야 할 때 나간다. 잠자리는 5분 거리에 있는 모텔이다. 18일 째 같은 생활이다.

4월19일. 이원상씨는 점심을 먹다 전화를 받았다. 울산에 있는 직장에서 온 것이다. 일을 못나간 지 18일 째. 소장으로 일하는 현장 사무실에선 그를 찾는 전화가 빗발친다. 집이 있는 부산엔 가볼 겨를이 없어 지난 일요일 처음 다녀왔다. 생업을 포기하고 대책위 자리를 지키는 건 그 뿐만 아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직장에서 잘린 사람도 있다. 여기에만 매달릴 수 없어 형제들끼리 교대하기도 한다.





실종된 금양호 선원들. 시신을 찾은 김종평씨의 영안실에도 찾는 이가 없다(맨 위).

가족 대책위는 답답함에 할 말을 잃었다. 보름이 넘는 동안 수색은 물론 제대로 진행된 일처리가 하나도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그간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선체를 인양하고, 의사자로 인정해달라고 등 요구했지만 정부로부터 이렇다할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다. 가족 대책위와 유일한 소통 창구는 구청이다. 인천시 중구청의 '사고수습대책위'가 꾸려졌지만 가족들이 요구한 사항을 들어줄 권한이 없다. 다만 구청은 가족들의 요구를 '위'로 전달할 뿐인데, '위'에서는 감감 무소식이다. 이 위원장은 "직권을 가진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다. 도대체 전달이 되는 건지 아닌지. 뭐가 문젠지 알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의사자 자격을 주는 방안이 추진된다는 사실도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 가족들은 구청에 사실인지 여부를 물었지만, 진행 상황조차 듣지 못했다. 구청 관계자는 "중앙부처에서 가타부타 말이 없어 우리 입장에선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의사자 자격여부도 중앙에서 관할해 우리가 가타부타 말 할 사항이 아니다. 그외 문제는 지금으로선 선주와 협의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오전엔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 관련 특별 연설을 했다. 46명 해군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눈물을 흘렸지만 금양호에 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다.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실종자 가족들은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실종자 박연주씨 사촌 구자권씨는(53) "수색 작업을 요청하지 않았으면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일도 없는 것 아닌가. 숨진 해군들 생각하면 마음 아프지만 근무 중이기라도 했지, 민간인 금양호 선원들은 뭔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은숙씨(59)는 "이름은 아니더라도 언급 한 마디 할 줄 알았다. 24시간 뉴스를 봐도 금양호 얘긴 찾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백령도 사고 현장에 다녀왔다. 부표로 된 표식도 하나 없이 망망대해 한 가운데를 사고 지점이라 일러줬다고 한다. "거기라니까 거긴 줄 알았지만 허무했다. 가슴만 뭉클했지" 정씨의 막내 동생 정봉조씨는 사고가 나던 2일 금양호에 타고 있었다. 그는 사고 소식을 듣고 금산에서 한 걸음에 달려왔다. 1년 전 마지막으로 본 동생이다. 기다림이 길어지면서 금산에서 농사일을 하던 그는 열흘 넘는 갑갑한 모텔 생활을 견디기가 힘들다. 그는 뉴스를 보며 "군인만 사람인 건 아니다"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가족 일부는 19일 오후 인천시청을 찾았다. 인천시에서 천안함과 금양호 실종자 합동 분향소 설치를 한다는 기사가 나간 후였다. 가족들은 선내 수색을 앞두고 마침 분향소 설치를 내부에서 의논 중이었다. 하지만 시 관계자는 면담에서 "천안함 분향소 건을 중심으로 검토 중이다. 사실 금양호 선원에 관해선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다"라고 밝혔다. 가족들은 "군인들만 사람인 건 여기서도 마찬가지다"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간의 답답함을 호소하던 실종자 안상철씨의 동생 안상진씨는 결국 "마음도 없는 예산은 필요도 없다. 생업 버리고 가족들 왜 이러고 있겠나"라며 울분을 토했다.

시신으로 발견된 김종평씨의 동거인 이삼임씨는 김씨가 입양 보낸 아들을 몇 주간 찾다가 결국 포기했다. 어떤 단서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18일 저녁 김씨의 빈소가 차려진 송도사랑가족병원 2층에서 혼자 잤다. 김씨를 홀로 두고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손님이 찾지 않는 빈소를 혼자 지킨 지도 수일 째다. 가족대책위는 성금 중 일부를 그녀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금양호 98호 선원들은 침몰 전날 한자리에 모여 천안함 수색작업 참여여부를 놓고 회의를 했다고 한다. 김재후 선장 등 선원들은 주변의 만류에도 수색에 나섰다. 천안함 실종자들은 돌아왔지만 이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숨진 군인들의 추모 열기에 비해 이들의 죽음마저 잊혀지면서 금양호 가족들의 기다림은 길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