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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소식

[스크랩] 당포함 사건 전말&사진~

(주)대성테크 2012. 4. 10. 09:05


 

당포(56 함 사건)

 

1.당포 함 사건이란?

1967년 1월19일 동해에서 해군 초계함인 당포함의 어로 보호 작전 도중

북한 해안 포대의 기습으로 전투 중 침몰한 사건이다.

 

2.당포 함은 어떤 군함인가?

미국 해군의 2차 대전 당시 건조한 650톤급 초계 호위함(PCE)으로 

한국해군에는 62년 8월6일 배치되어

당포라는 함명과 56번의 함번을 명명받앗다.

 

3.당포함의 전투장비

함수: 3인치 함포 1문

함 미: 40mm 보포스 2연장 기관포 3문

기타:20mm 2연장 기관포2문, 대잠 폭뢰 투하괘도2기, 대잠 폭뢰 발사기 2문

 

4, 인원구성

함장: 김승배 중령.

부장: 황중식 소령

사관: 함장,부장포함 8명

부사관/수병: 71명

함 내 총원: 79명

 

5. 어로보호 작전이란?

 

당시 동해 휴전선 부근 해상에서 겨울철 어민들의 명태잡이를 보호하기위해

수산청장은 해군에 어선 보호를 요청했고

해군은 66년11월1일부터 67년 1월15일까지

어로보호기간을 설정하여 함정들을 동원하여

어선들을 보호하고 통제하는 작전을 실시 중이었다.

 

6. 당시 당포함의 임무는?

 

당포 함은 66년 12월28일 진해 항을 출항하여 다음날 

동해 작전해역에 도착 노량 함(51함)과 교대해 동해 경비분대에 배치되어

북방 한계선 근해에서 해상초계와 어로보호작전을 실시 중 이었다.

 

7. 사건기록

 

67년 1월19일 오전 명태잡이 어선들이 거진 앞바다에서

명태 때를 따라 북상 오전11시경 200여 척의 어선 단이

북방 한계선 이북 6-7km해역에서 조업을 실시하자 당포 함은

어선단 북방 4km해상에서 어선 단을 감시중인

북한 경비함2척을 의식해 어선들을 남하 시키고자

 

해안선에 붙어 어선 단의 좌측에서 북상하면서

경고방송과 5번의 기적을 울렸다.

 

이 당시 당포 함은 자신들 위치가 북한 해안 포의 사정거리이지만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걸

북한도 알고 있을 테니 사격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

어선보호를 위해 해안선에 근접햇던것이다.

오후 1시30분 당포 함은 근처에 위치한 53함에게 지원요청을 하고

어선 단에게 계속 남하를 권고하며 북상하였다.

 

그러던 1시55분 함교에서 해안선을 주시하던

당직사관 이석무중위가 섬광이 보였다고 부직사관 홍대일 소위에게 말하는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함의 주위로 물기둥이 여러 개 솟아올랐다.

가장 가까운 물기둥은 함에서 불과 10여미터엿다. 명백한 조준 사격이엇다.

당직사관은 즉시 함장에게 보고하고 총원 전투배치를 명령했다

연이어 함의 속력을 최고속도로 올리라는 명령이내려졋다.

 

1시58분 포탄이 처음 함에 명중되어 함미 기관실과 타기실이 파괴되고

신동원 중사,김만훈상사가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파손된 부분으로 해수가 유입되고 기관작동이 정지되었다

 

보수반이 필사적인 보수작업을 벌였으나

화재가 심해 기관실로 진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엇다.

1차 사격이후 1분 정도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탄착을 수정했는지

2차 사격부터는 포탄의 명중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오후2시 본함 북괴 포대와 교전 중이라는 통신이

상급부대로 발신되었다.

2시12분 동해 경비분대 사령관은 즉시 전함정은 당포 함을 지원하라는 명령을 내렷다.

그런 와중에서도 당포 함은 함포를 발사하며 적의 해안 포 사정거리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추진기가 파괴되고 당포함의 속도가 떨어지자 포탄은 점점 명중도가 높아져갔다.

 

함포들이 하나씩 파괴되고 함은 연기와 화염에 덮이기 시작했다,

2시1분 함수 기관실과 조타실이 파손되어 함의 기동력이 완전 상실되고

일부수병 들은동요하기시작햇다.

2시3분 함교에도 포탄이 명중되어 함장도 전신에 파편상을 입고쓰러졌다.

 

2시8분 보수반의 필사적인 작업에도 불구하고 해수유입을 차단할수없게되엇다.

함이 심하게 기울어지자 최후까지 40mm포를 사격하던 41포대도

사격을 계속하기가 불가능해졌다

당포 함은 3인치 포 20발/ 40mm포 150발을 사격했지만 

북한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2시11분 본함 침몰 중이라는 통신이 당포함의 마지막 통신이엇다.

한편 당포 함을 지원하기위해 급히 출동한 한산함(53함)이 도착 즉시

3인치 24발/40mm 80발을 사격하며 당포 함을 지원하자

북한도 경비함2척이 당포 함쪽으로 접근해왔다

 

이어 2시35분 호위함(DE) 경기함이 현장에 도착하자 북

한 경비함은 철수했고 해안 포 사격도 중지되었다.

2시26분 함장은 함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부장의 지휘 하에 퇴함을 명령

부장 황중식 소령의 지휘로 부상자,하급자,사관의 순서로

퇴함이 시작되었다.

 

퇴함한 당포 함 승조원들을 구하기 위해 한산함,경기함 뒤늦게

합류한 낙동강 함이 구조작업을 개시 51명을 구조하였으나

28명은 구조하지 못하고 구조된 인원 중에서 4명이 사망하였다

이렇게 하여 39명의 승조원이 전사했다.

 

2시34분 당포함은 한차례 폭발 후 수면아래로 사라졌다.

우리 어선 단은 당포 함이 방패가 되어준덕택에

모두 피해 없이 돌아올수잇었다.

 

8.사건이후

 

1월27일 오후 2시 해군장 엄수

박태만 중위(작전관),이석무중위(포술장) 충무무공훈장 추서

전사 장병총원 화랑무공훈장 추서, 총원 1계급특진

28일 오전 10시 동작동 국립묘지 안장.

 

9. 전사자 명단

 

생존 당시 기준

중위 이석무,박태만

상사 이상호,장태식

중사 홍수근,조덕수,김종구,김경두,주재진

하사 윤임석,박정남,김길언,이수만,전영일,성병수,최갑식,손두성,김창성,배정남

     이광년,박효삼

병장 이무형,강영방,장인덕,송인태,김성태,임승철,강호종,김종관,윤종춘

상병 손봉수,이희성,박홍걸,배윤상,최정래

일병 심용섭,방현구

이병 노영수,김동선

  당포함

 

 이 사진은 침몰직전 53함에서 촬영한것이다.

출처 : 해군 전우회 (인천 / 부천)
글쓴이 : 이병욱 병316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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